누군가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처음부터 특별해서일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거나,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아름다움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린 왕자》를 읽다 보면 정반대의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특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은 아닐까.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그렇다.
그의 별에는 장미 한 송이가 피어난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까다롭고 허영심도 있다. 어린 왕자는 장미를 정성껏 돌보면서도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작은 별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 끝에 지구에서 수많은 장미가 피어 있는 정원을 발견한다.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던 장미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구에는 그와 비슷한 장미가 수없이 많았다.
이 장면은 꽤 잔인하다.
내가 유일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흔한 것이라면, 그동안 내가 느꼈던 특별함은 착각이었을까. 어린 왕자가 실망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자신의 장미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왕자와 여우는 서로에게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여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맺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서로는 다른 존재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어린 왕자의 장미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보면 수많은 장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그 장미에게 물을 주었고, 바람을 막아주었고, 벌레를 잡아주었고, 장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시간이 장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별함은 발견하는 것일까,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특별한 것을 찾아다닌다.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물건, 더 좋은 취미.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실제로 더 나은 선택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관계를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도 《어린 왕자》의 장미를 생각하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비교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은 오래 사용해서 손에 익었기 때문에 소중하다. 어떤 장소는 특별한 풍경이 없더라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잊을 수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그렇다.
이런 가치에는 객관적인 순위를 붙이기 어렵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서 발견한 장미들이 자신의 장미보다 덜 아름답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중요한 차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가 어느 장미와 시간을 보냈는가에 있다.
그렇다면 특별함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성질이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성질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쓴다는 것
이 책에서 특히 오래 남는 부분은 사랑과 시간이 연결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실제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나고, 기다리고, 기억하고,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은 관계를 꽤 정직하게 보여준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다고 말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디에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특별한 이유 역시 그가 장미를 특별하다고 선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많은 시간을 장미와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사랑을 감정만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좋아하는 마음은 생겼다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행동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할 수도 있고, 때로는 멀어지고 싶을 수도 있다.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도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은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관계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책임은 소유와 다르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책임을 소유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을 소유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같은 마음을 요구할 수도 없다.
책임은 상대를 붙잡아 두는 권리가 아니라, 내가 맺은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깝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하면서 그것을 책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돌아가려는 마음에서 중요한 것은 장미가 자신의 소유물이어서가 아니다.
그 장미와 자신 사이에 이미 관계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별을 떠날 때 어린 왕자는 장미의 말에 혼란스러워했다. 여행을 거치고 나서야 말 뒤에 있던 마음과 자신이 장미에게 느끼는 마음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떠난 뒤에야 관계의 의미를 알게 된 셈이다.
사랑하면 책임져야 하는가
처음에는 이 책의 질문을 이렇게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일인가.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사랑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보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게 되면 이미 나의 행동에 책임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쪽에 가깝다.
관계를 맺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행동이 관계를 맺은 뒤에는 달라진다. 기다리게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일, 돌보기로 한 것을 방치하는 일, 가까워진 사람을 아무 설명 없이 밀어내는 일에는 이전과 다른 무게가 생긴다.
관계가 우리 행동의 의미를 바꾸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결국 장미가 얼마나 특별한 꽃인가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어린 왕자의 장미는 여전히 하나뿐이다.
특별함은 희귀함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함께 보낸 시간과 돌봄, 기억 속에서도 생긴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나는 실제로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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